<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김애란 작가는 AI와 인간의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인간에게는 있고 AI에게는 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망설임'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누군가의 고민이나 아픈 이야기를 들을 때, 인간은 상대방을 위해 말을 삼키고 주저하는 순간이 있지만 AI는 어떤 이야기든 항상 유려하고 빠르게 답변을 해준다는 것이죠. 그리고 때로는 유려함과 신속함보다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더 위로가 되더라고.
저도 종종 AI에게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곤 합니다. 처음엔 머릿속의 복잡한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니 속이 시원하고 고민이 한 번에 해결되는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고민의 내용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감정 없는 해결책'에 지쳐 금세 대화를 종료하게 되었죠. 이처럼 인간의 공감대 측면에서 AI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AI가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인간의 공감대마저 결국 학습으로 가능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렇다면 과연 AI와 내가 차별화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싶어지더군요.
그런데 지난주, 일글레터 구독자인 지인이 답장을 보내주었는데요. 답장에 이런 문구를 써주었더라고요. '꾸준함이 수진님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 같아요'
주기적으로 글을 쓰지 못해 마음속 한편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 빈틈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애쓰는 마음을 알아준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덕분에 저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꾸준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어요.
어쩌면 '꾸준함'이야말로 인간이 AI를 절대 이길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AI는 한 번 자동화시켜놓으면, 인간이 멈추라고 할 때까지 영원히 똑같은 일을 수행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AI의 꾸준함과 인간의 꾸준함은 명백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AI의 꾸준함이 '멈추지 않는 반복'에 가깝다면, 인간의 꾸준함은 '흔들리면서도 다시 돌아오는 힘'에 가깝다는 것이에요. 마치 제가 글을 쓰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다가도, 그 죄책감을 이겨내고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요.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나태주 시인의 시 「행복」의 첫 구절은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태주 시인이 생각하는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이겠죠. 저 역시 몇 번이고 흔들리다가 결국 다시 노트북 앞에서 글을 쓸 때면 '중심'으로 돌아왔음을 느낍니다. 중심은 꾸준히 무언가를 해본 사람에게만 있는 '돌아갈 곳'이라고 생각해요. 김애란 작가님이 말씀하신 망설임 외에, 인간에게는 있고, AI에게는 없는 또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중심'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