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저희 집은 아픈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셔서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지 못했어요. 그러다 아주 가끔 친척들이 도와주시면, 짧은 가족 여행을 떠났습니다. 저는 아픈 할아버지 할머니 없이 넷이서 여행을 떠나는 게 무척 좋았어요. 아픈 가족과 함께 산다는 건, 어린 날의 저에겐 꽤 무겁고 힘든 일이었기에 집을 떠나는 여행이 잠을 설칠 만큼 반가웠을 겁니다.
그런데 꼭 여행지에 도착하기 10분 전쯤, 아버지는 잠든 언니와 저를 깨우곤 "우리가 이런 데를 오면 또 언제 오겠냐" 하시며 운을 뗐습니다. 저는 여행을 하는 내내 다시 또 오지 못할 이 여행이 시한부 여행처럼 느껴져 하나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여행을 계속 떠나야 할 것만 같은 막연한 마음이 있어요. 가끔씩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도 정말 가고 싶어서 떠난다기보다는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떠나는 이유가 더 큰 것 같기도 해요.
각자마다 여행의 이유는 다르겠지요. 오랜 고민 끝에 주말엔 남해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연차도 이틀이나 썼습니다. 너무 멀어서 엄두가 나지 않아 수백 번 고민하다 덜컥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멀리 떠날 곳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멀리 떠날수록 내가 떠나온 이유를 생각할 시간도 많아질 테니까요.
다음 주 일글레는 한 주 쉬어갑니다.
남해에서 많은 것들을 비우고 느끼고 즐기고 돌아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