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가 박성준 님은 운이 안 풀릴 때는 '관악산에 가라'라고 조언합니다. 관악산의 맑은 정기를 받으면 좋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약 19년간 매주 관악산 줄기인 '비봉산'을 오른 저는, 그 정답을 알 것 같습니다.
등산을 시작한 이유는 딱 두 가지였어요. 돈이 들지 않고, 내가 원하는 만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직업도, 하고 싶은 일도 없던 저에게 등산만큼 좋은 운동이 없었죠. 하지만 초반에는 체력이 너무 약해서 산의 중턱도 오르지 못하고 내려오곤 했어요. 죽었다 깨나도 꼭대기까지는 오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아예 산 중턱을 목표점으로 생각하고 늘 거기에서 되돌아왔죠.
등산을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났을까. 하루는 갑자기 목표점을 넘어보고 싶어 꼭대기까지 올랐습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겁먹었던 만큼 힘들지는 않았어요. 뻥 뚫린 산 위에서 내려다본 우리 동네가 손바닥만 하게 보였고, 모든 것이 내 발아래에 있으니 왠지 우스워 보이기도 했어요. 하나의 세상이 새롭게 열린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남들은 그 작은 산 좀 올랐다고 유세를 떠냐고 할지 모르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본 적 없던 저에겐 생애 가장 큰 성취감이었죠.
'산에 오를 땐 자잘한 일들보다도 조금 더 원대한, 다소 비현실적인 꿈을 생각하게 되니까. 땅에서는 누구보다 이성적인 내가, 산에 오르면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비이성적인 사람이 되니까. - 유수진,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중에서'
언젠가 제 책에도 다뤘지만, 제가 책을 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산'이었습니다. 오전에 산에 오르면, 적당히 단단해진 몸의 근육과 이완된 정신이 글 쓰는 오후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산꼭대기에 오른 날엔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는데, 어쩌면 산이 저에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더 크게 살라고 힘을 불어넣어 준 게 아닐까 싶습니다.
관악산은 풍수지리적으로 '기운이 강한 산'이라고 합니다. 학자, 공무원, 법조, 관직과 인연이 강해 서울대학교, 법원, 검찰청 같은 기관들이 이 일대에 많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제가 관악산의 풍수지리 덕을 얻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집 근처에 다른 산이 있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것 같아요. 어떤 산이든 내가 그 산에 올라 스스로가 만든 벽을 뚫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막힌 운을 뚫은 것일 테니까. 즉, 운의 흐름을 만드는 주체는 '산'이 아닌 '산에 오르는 나 자신'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