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4, 3, 2, 1, 번지." 살면서 목숨을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20대 초, 친구와 가평에 놀러 갔다가 번지점프를 한 것입니다. 갑자기 왜 번지점프를 하겠다고 나섰는지는 모르겠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번지점프를 하는 모습을 보며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고, 가평까지 놀러 왔는데 번지점프를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가평 정도는 주말마다 갈 수도 있는 곳인데 말이죠.
당시 저에게 번지점프 값 5만 원은 엄청난 거금이었어요. 결코 돈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 제가 5만 원을 냈다는 건 확실히 번지점프를 뛰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낡고 흔들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5m 위에 올라서기 전까지는 말이죠.
55m 위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높았고 번지점프대는 무척 허술했어요. 안전요원은 제가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주지 않고, 굉장히 귀찮은 듯한 말투로 점프대에 서라고 명령했어요. 점프대는 양쪽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반대편 쪽은 호수가 있었고 제가 뛰어야 할 곳은 물이 거의 없는 돌바닥이었어요. 제가 반대편으로 뛰어내리면 안 되냐고 묻자 안전요원은 이유도 없이 '안 된다'라고 하더군요. 그리곤 바로 무미건조하게 카운트 다운을 세기 시작했습니다.
5, 4, 3, 2, 1, 번지.
저는 첫 번째 카운트 다운에 뛰어내리지 못했습니다. 연예인들은 팔을 활짝 펴고 잘만 뛰어내리던데, 다리가 미친 듯이 떨리고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어요. 제가 뛰어내리지 못하자 안전요원은 한숨을 푹 쉬고는, 이번에 뛰어내리지 못하면 다시 뛰어내릴 기회가 없다며 바로 다음 카운트 다운을 셌어요. 저는 5만 원이 물거품 될까 봐 이를 악물었습니다.
5, 4, 3, 2, 1, 번지!
점프대에서 발을 떼던 그 순간을 저는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허공을 가로질러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몇 초 사이에 다짐했습니다. 절대로, 다시는, 다른 누군가의 카운트 다운에 내 인생을 던지지 않겠다고. 돈 때문에 더 큰 가치를 잃지 않겠다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는 저에게 대단하다고 말했지만, 저는 번지점프에 성공한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타인과 조건에 떠밀리듯 뛰어내린 번지점프는, 성공을 해도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연말이 될 때마다 떠밀리듯 번지점프대 위에 서는 기분이 듭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12월 31일이 되고 저를 또 한 번 번지점프대 위에 올려놓습니다. 매해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왔는데도 나이를 한 살 먹는 일은 결코 익숙해지는 법이 없네요. 내년에는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저에게는 전에 없던 '이모'라는 역할이 생깁니다. 책임져야 할 일의 무게도 무거워졌습니다. 기대도 되지만 변화가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준비 없이 뛰어내리진 않습니다. 올 한 해의 기쁨과 슬픔을 되돌아보고, 내년에 이루고 느끼고 싶은 일들을 기대하며 저의 속도대로 내년에 뛰어들 테니까요.
자,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고 마음 속으로 카운트 다운을 세기 시작합니다.
5, 4, 3, 2, 1, 2026년으로 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