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저의 꿈은 '예능 방송작가'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전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을 다 섭렵할 정도로 좋아했고, 방송국에서 연예인들과 가까이에서 일하는 게 왠지 멋지고 재미있어 보였거든요. 남들을 웃기는 것도 좋아했으니, 예능 작가가 저에게 딱 맞는 직업일 거라고 장담했습니다.
장담은 했지만 정말 방송작가가 평생의 직업이 될 수 있을지 테스트가 필요했어요. 방송작가가 되려면 보통 교육원을 수료해야 했기 때문에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마침 한 다큐 프로그램의 작가 구인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이 되었어요. 제가 원했던 예능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놓칠 수 없는 기회이기에 휴학계를 내고 꿈에 그리던 방송국에 들어갔습니다.
첫 출근날 안내는 문자 한 통이었습니다. 촬영이 있을 거고, 아침 7시까지 방송국 앞으로 오면 된다고 했습니다. 추워도 너무 추웠던 겨울날, 동도 트지 않은 새벽녘에 버스를 타고 가던 그 길을 잊지 못합니다. 방송국 앞에 도착했지만, 다들 장비를 준비하느라 바쁠 뿐 저를 챙겨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날 12시간 넘게 야외 촬영을 했습니다. 출연자의 옷을 들고 있다가 촬영이 끝나면 챙겨주는 일을 했고, 하루 종일 야외에 서 있던 탓에 온몸이 얼었죠.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을 무렵, 저는 PD님께 울면서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달 만에 모든 걸 다 평가할 수 없겠지만 저는 평생 이 직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비교적 자유롭지만 불규칙한 근무 시간, 고강도의 촬영, '막내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자로서 견뎌야 하는 무수히 많은 잡일까지. PD님은 그날 제게 맛있는 점심을 사주셨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제가 쉽게 포기한 것이 아니라, 업계의 특성과 제가 잘 맞지 않을 뿐이라고 말씀해 주신 게 큰 위로가 됐죠.
저와 달리, 제 대학 동기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방송 작가로 일해왔고 현재 전 국민을 넘어 전 세계인들이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며 활약하고 있습니다. 제가 겪었던 어려움은 물론, 그보다 더 어려운 일들도 이겨내는 친구를 보며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친구는 제게 말합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규칙적으로 일하는 네가 훨씬 더 대단한 것 같아. 난 절대 못할걸."
아침잠이 많은 친구는 대학 때부터 아침 수업을 유독 힘들어했어요. 자신은 아침잠이 많아서, 매일 아침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의 길은 갈 수 없을 거라고 했죠.
만약 그때 제가 방송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그 꿈을 이어 나갔더라면 어땠을까요? 저는 아마도 매일 출근길마다 울었을 거예요. 규칙적인 생활이 무척 중요한 저로서는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잘 맞았고, 콘텐츠마케팅 일을 하며 제가 좋아하는 크리에이티브도 발산할 수 있으니 더없이 좋은 직업을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어떤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것을 들고 어디로 뛰어들어야 할지 선택하는 일입니다. 똑같은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어도, 어떤 환경에 나를 던지느냐에 따라 그 결과와 나의 행복은 천지차이일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