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수진님과 현실(글 바깥)의 수진님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이직한 지 2주쯤 되었을 무렵,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동료가 말했습니다. 저를 실제로 만나기 전 제가 쓴 글을 읽었는데, 글에서 느껴진 이미지와 현실에서의 이미지가 달랐다는 겁니다. 동료가 느낀 저의 이미지가 어땠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제 글을 MBTI로 따지자면 'I'에 가까워,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성이 높을 것 같지만, 현실의 저는 'E'에 가까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헛소리도 씩씩하게 잘하는 편이고, 물건을 여기저기 잘 놔두고 다니거든요.
어떤 모습이 진짜 제 모습일까요? 최근 초등학생이 된 딸이 학교에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해 고민인 친구에게 제가 해준 말이 있어요. 사실은 나도 초등학생 때 친구들 틈에 끼는 게 힘들어서 혼자 화장실 칸에 숨어서 쉬는 시간 10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고. 저를 늘 자신감 넘치고 유쾌한 사람으로 알고 있던 친구는 '너 같은 애가 그랬다고?'하며 깜짝 놀랐죠.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때, 서울에서 안양으로 전학을 오게 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혼자 애를 먹었어요.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갑자기 복도에 토를 해서 당황했는데, 6학년이었던 언니 반에 찾아갔지만 언니도 적응하느라 바빴던 지라 얼른 반으로 돌아가라고만 해 속상했죠.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다음 학기에 저는 반 친구들의 추천으로 반장이 되었어요.
"수진이는 용감해요."
"수진이는 책임감이 있는 친구예요."
혼자 화장실 칸에서 쉬는 시간이 끝나길 기다리는 제가, 전학 온 지 한 학기만에 반장이 되다니 스스로도 괴리감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나는 진짜 어떤 사람일까? 친구들이 나의 소심한 모습을 알면 실망하진 않을까 두렵기도 했죠. 전교생 앞에서 장기자랑으로 핑클 춤을 추고, 남자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빗자루를 들고 싸우던 제가 그런 걱정을 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돌이켜보면, 걱정과 긴장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몰라 화장실로 숨었을 뿐, 어린 날의 저는 나름대로 저만의 안전한 곳을 찾았던 것 같아요. 조금씩 내가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고나서야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도 꺼내 보일 수 있었겠죠. 누군가는 그것을 '부적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베이스캠프'였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친구의 딸도, 언젠가 자신의 베이스캠프를 떠나 또 다른 모습을 꺼내 보일 수 있기를 응원해 주었죠.
성인이 된 지금도 저는 두 가지 아니, 수백 가지의 면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릴 때와 달라진 게 한 가지 있다면, 이제는 걱정이 있거나 긴장되거나 답답할 때 화장실로 숨는 게 아니라 글을 씀으로써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글 속의 저는 현실의 저보다 조금 더 무겁고 깊은 것 같기도 하네요. 글 밖의 저는... 직접 만나보시면 알게 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