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년간 에세이를 쓴 건, 세상에 태어나 잘한 일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일입니다. 약 8년 전,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문득 '브런치나 해볼까?'라고 생각했던 것을 시작으로 어느덧 8년 차 작가가 되었네요. '출간 작가', '브런치 상위 1% 작가' 등의 결실을 프로필에 내세우곤 했지만, 지난 8년을 되돌아보았을 때 스스로 가장 칭찬하고 싶은 점은 8년이라는 시간 속에 묻힐 뻔한 인생의 특별한 순간들과 소중한 기억들을 에세이라는 형태로 기록해 두었다는 것입니다.
서른두 살에 처음으로 독립했을 때, 떠나본 여행 중 가장 길었던 14일간의 미국여행기, 출판사에서 첫 책 출간 제안을 받았을 때, 울산에서 북토크를 열었을 때, 그토록 가고 싶던 회사에서 오퍼레터를 받았을 때 등 모두 인생에서 꽤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들이지만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잊고 살았을 거예요. 그때의 생생한 떨림과 감정은 물론, 당시 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들을 했었는지 에세이에 고스란히 남아있죠.
제가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기기 시작한 것도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에세이 한 편을 쓰려면 에세이를 쓰는 사람은 나에 대한 생각을 수백, 수천 번을 해야 하거든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했는지 여러 번 복기하다 보면, 내가 해낸 일의 성과와 상관없이 자신감이 차올라요. 내가 나를 잘 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자신감이겠죠.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저는 브런치가 친정집 같은 느낌이 들어요. 새로 출시한 기능들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있어도, 그럼에도 저는 사람들에게 항상 브런치에 글을 쓸 것을 추천해 왔어요. 미우나 고우나 내 친정집이고,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저를 '작가'로도 만들어준 플랫폼이니까요.
브런치와의 인연이 참 신기한 게, 얼마 전 서촌에 갔다가 우연히 브런치 10주년 전시를 보게 됐어요. 브런치 10주년 전시가 진행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서촌에서 열리는 줄은 몰랐거든요. 전시장에는 브런치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고, 직접 글을 써볼 수 있는 활동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는데요. 정말 많은 분들이 책상에 앉아 진지하게 글을 쓰고 계신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10년 전에 비해 정말 많이 높아졌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해를 넘기면 나이만 늘어가지 않는다. 1주년, 2주년, 3주년... 함께라는 시간이 쌓여간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광고 문구처럼,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면 어제와 똑같이 흘러가 버렸을 하루하루가 작품처럼 쌓이고 있어요. 에세이를 쓰면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모자라겠지만, 단 하나를 꼽는다면 내 하루가 글이 되고, 그 글이 작품이 된다는 것입니다. 에세이를 씀으로써 작품 같은 인생을 살고 있으니, 꽤 멋진 인생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