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세희 씨 집의 에어컨, 냉장고, 독서대, 텀블러 등 물건 곳곳에는 휘갈겨 쓴 글씨들이 있습니다. '등펴, 목 허리, 바르게'와 같이 생활 습관을 되돌아보게 하는 문구라든지,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등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의 태도에 대한 내용이죠. 예쁜 종이에 글씨를 써서 벽에 붙이거나, 줄을 맞추어 글씨를 쓸 법도 한데 메모가 너무 자유분방해서(?) 놀랐어요.
"잘 안 되니까 적어놓는 거예요"
아마도 그녀는 문득 든 생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당장 눈에 보이는 곳으로 달려가 글씨를 적었을 거예요. 예쁜 종이를 찾아, 예쁘게 글씨를 적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생각을 놓치지 않고 잘 보이는 곳에 적는 것이었겠죠. 기안84가 책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그녀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을 고른 뒤 손가락으로 냉장고를 가리켰습니다. 이미 그 책에서 발췌한 최고의 문장을 냉장고에 적어두었고, 매일 냉장고를 열 때마다 그 문구를 읽은 것입니다.
"전문가의 방식과 행동을 관찰하고 그 기술을 훔쳐 내 것으로 만든다.' 이것이 숙달로 이어지는 대원칙이다.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에 녹여 습관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 사이토 다카시, <일류의 조건> 중에서"
치위생학을 전공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어느 날 실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불 꺼진 철장을 보면서 '왜 나는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꿈인 배우가 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고, 두 달 만에 길거리 캐스팅에 발탁됩니다. 스스로를 '운발인생'이라고 말하지만, 그녀를 보며 '운'도 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한 발의 용기를 떼지 않았다면, 배우가 될 기회도 얻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러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머리로만 배우는 것이 아닌, 몸으로 배우는 그녀의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체화'.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반복과 연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 자동적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누구나 좋은 습관을 다짐하지만 제대로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데요. 배우 이세희 씨를 보며 저는, 평소 많은 책을 읽는다고 하면서 뼛속 깊이 체화한 부분은 많지 않았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독서란 자기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남이 대신 생각해주는 것이며, 그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오늘은 책의 문장들을 종이에 옮겨 적어 벽에 붙였습니다. 비록 이세희 씨처럼 에어컨에 글씨를 쓸 용기는 없지만 자주 종이와 펜을 꺼내 들고 좋은 습관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화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 봅니다. |